설씨(薛氏)의 관향(貫鄕)은 경주(慶州), 순창(淳昌) 두 곳과 개성 등 8개 본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경주에서 발원(發源)해 내려오다 고려 전기 순창이 분관해 나갔으며 세대가 지나면서 사는 곳에 따라 다른 본관을 더러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시조는 신라(新羅) 개국공신 육부촌장의 한사람인 설호진(薛虎珍, 居伯)으로 당시 진한(辰韓) 땅 사로(斯盧)국(지금의 慶州)의 명활산 고야촌(高耶村: 경주시 천북면 화산, 물천, 동산리와 안강읍 일대)을 다스리던 촌장이다. BC57년 고야촌 호진 등 여섯 촌장이 의논하여 박혁거세를 초대왕으로 추대하면서 나라이름을 서라벌(徐羅伐) 혹은 서나벌(徐那伐)로하며 신라를 건국한다. 지금도 신라 건국의 역사를 기리고 육부 촌장에 대한 넋을 받들기 위해 경주 남산 서쪽 기슭의 양산재(楊山齋)에서 해마다 음력 8월23일이면 이분들의 위폐를 모시고 대재(大齋)를 지내고 있다.
3대 유리왕(弩禮王노례왕) 9年(서기 32년)에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로 개칭되었고 설(薛)씨가 사성(賜姓)되었으며 관향(貫鄕: 시조가 난 곳. 관貫ㆍ관적貫籍ㆍ본本ㆍ본관本貫ㆍ본향本鄕ㆍ선향先鄕ㆍ성향姓鄕ㆍ향관鄕貫)은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世居地)를 따른 것이 통례인바 경주(계림, 월성)로 하게 되었다.
(薛氏) 시조 호진께서는 23대 법흥왕 때 무신공(武神公), 29대 태종 무열왕(재위 654~661) 때 장무왕(壯武王) 시호(諡號)를 받으시게 된다. 무(武)자 시호는 신무(神武)의 기개를 널리 높이 드날리셨다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성현(聖賢)으로는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원효성사(元曉聖師)?유학(儒學)의 종주(宗主) 홍유후(弘儒侯) 총(聰)?중국황실에 까지 이름을 떨친 천하명의 경성(景成)이 있다.
설씨는 오늘날 희성(稀姓)으로 변하였으나 삼국사기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민간 성씨는 설씨녀, 계두, 오유, 수진 등 설씨이다. 이외 다른 성씨는 통일 무렵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설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씨족이다. 그러나 서기 647년 선덕여왕의 후계를 노린 비담(毗曇)이 설씨가 세거(世居)해 온 습비부 지역의 명활성을 근거지로 한 반란으로, 당시 설씨 들이 자의든 타의든 적잖게 가담하게 되어 희생이 컸을 것으로 짐작되고, 고려시대 1202년 신라부흥운동 실패를 전후한 여러 차례 경주 중심의 민란도 가세(家勢)가 기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순창설씨 등은 경주가 나락(那落)에 떨어진 이런저런 혼돈의 시기에 경주를 떠난 무리들인 것으로 보인다.
경주는 상고시대 진한 12국중 사로국으로 신라 건국 후 서라벌·계림(鷄林)으로 불렸었고, 고려 때 경주·동경·경주·계림(부)으로 개칭되는 변화, 조선시대 1413년부터 다시 경주(부), 1895년 경주군, 1955년 경주읍이 경주시가 되면서 군은 월성군, 1989년 월성군이 경주군, 1995년 통합경주시로 출범하게 된다. 2017년 7월 현재 경주에는 1897년 설립 당시 경주군공립학교, 이어 경주보통학교·계림국민학교라 했던 100년을 넘긴 계림초등학교가 있다. 계림중·계림고등학교도 있다. 경주초등·중·고등학교도 있다.
참고로 대한제국 조정에서 1908년 펴낸 증보문헌비고에 경주설씨 시조 홍유후 총, 순창설씨 시조 인손으로 되어 있다. 전고대방, 사천년문헌통고, 조선씨족통보, 만성대보, 성씨총람 등 대부분의 성씨관련 문헌도 그러하다.

본관(本貫) 순창(淳昌)은 고려 4대 광종(재위 949년~975년) 무렵 31세 인손(仁孫)이 분관하여 순창을 관향(貫鄕)으로 삼으면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문벌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경주설씨와 순창으로 분별되게 등과자가 있고 천하명의 경성도 고려사에 계림인으로 총의 후세로 자랑스럽게(自言)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중기 이후 고려사 등 기록에 경주설씨가 없고 순창뿐이란 것과 조선 중기 이후 순창 후손들이 다른 곳에서 경주로 옮겨왔다는 일부의 주장은 거짓이 된다.
이는 족보조작이 만연하던 조선후기 1749년 기사보에서 조어(造語) 개관(改貫)의 망상(妄想)에서 비롯된 것으로 망발(妄發)이다. 조어(造語) 개관(改貫)은 모든 설씨의 본관을 경주에서 순창으로 한다는 있을 수 없는 패륜(悖倫)으로 원효성사?홍유후 총 등 대(代)를 이은 성현 선대는 물론 시조와 신라시대 선조들까지 모두 순창설씨라는 망언(妄言)을 함부로 하게 된다. 조어(造語) 개관(改貫)은 2017년 7월 25일 현재 국립국어원(www.korean.go.kr) 표준국어대사전과 2005년 개설한 순창 홈페이지 족보용어 해설에도 12년이 지나도록 현재까지 등록되어 있지 않는(분적·분관은 있다) 우리나라에서 순창만이 쓰는 족보 용어 이다.
본관을 바꾸어 경주설씨는 없다면서 호도(糊塗)된 사실과 억지 논리를 여기저기 떠벌리다가 2000년 이후 누리망을 활용 조어(造語) 개관(改貫)의 망상에 찌든 무리들이 엄청 퍼다나르며 왜곡된 사실의 확산과 일반화를 시도하여 한 때 일부 백과사전에 설씨(薛氏)는 순창 단본이라고 하고 있던 것을 2015년 바로 잡은바 있다.